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대표작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2013)*는 ‘가족’이란 무엇인가, ‘부모’란 어떤 존재인가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작품입니다. 혈연 중심의 전통적인 가족관이 강한 일본 사회 속에서, 피가 섞이지 않아도 가족이 될 수 있는가 하는 묵직한 주제를 던지며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섬세한 감정선과 사실적인 연출로 관객의 내면 깊숙이 침투한 이 작품은 칸 영화제 심사위원상을 수상하며 국제적으로도 인정받았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영화의 배경, 스토리, 총평을 중심으로 작품의 깊은 의미를 되짚어보겠습니다.
변화하는 일본 사회의 가족관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는 2010년대 일본 사회의 변화를 배경으로 합니다. 전통적으로 일본은 가부장적이고 혈연 중심적인 가족 구조를 유지해 왔으며, 특히 '아버지'는 권위적이고 생계를 책임지는 존재로 여겨졌습니다. 이러한 가치관은 20세기 후반까지 강하게 이어져 왔지만, 21세기에 접어들며 점차 변화하기 시작합니다. 핵가족화, 맞벌이 부부 증가, 개인주의 확산 등의 요인은 가족의 형태와 기능, 의미를 다양하게 바꾸어 놓았습니다.
영화의 주인공 ‘료타’는 이런 전통과 현대의 가치 사이에 서 있는 인물입니다. 그는 엘리트 건축가로 일중독에 가까운 삶을 살고 있으며, 가족보다 일의 성취를 더 중시합니다. 이는 전통적인 ‘성공한 남성상’을 대변하지만, 정작 아내와 아들과의 정서적 거리는 점점 벌어져 있습니다. 이처럼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는 현대 일본 사회에서 점점 무너지고 있는 가족 간의 유대, 그리고 그 틈을 메우려는 개인의 내면적 갈등을 깊이 있게 담아냅니다.
특히 영화가 다루는 '병원에서 아이가 바뀌는 사건'은 일본 사회에서 드물게 발생하지만 상징적으로 매우 큰 충격을 줍니다. 혈연이라는 전통적 유대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과연 어떤 기준으로 가족을 정의할 수 있을까? 감독은 이 질문을 통해 가족의 본질, 그리고 사회가 여전히 고수하는 ‘피의 논리’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합니다. 그리고 그 질문은 비단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적인 현대 가족에게 던지는 보편적 물음이기도 합니다.
두 가족의 만남과 아버지의 변화
영화는 엘리트 가정과 서민 가정, 두 가정의 대조를 통해 이야기를 풀어나갑니다. 엘리트 직장인 료타와 아내 미도리는 아들 ‘케이타’를 6년간 키워왔지만, 어느 날 병원의 실수로 아이가 바뀌었고, 실제 친아들은 후쿠오카의 전파상 가정에서 자란 ‘류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이 사실은 두 가족 모두에게 엄청난 혼란을 가져오며, 영화의 갈등 구조가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초반부의 료타는 “당연히 친자와 살아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에겐 혈연이 곧 가족의 핵심이라 여겨졌고, ‘잘못된 아이’를 6년간 키워온 것에 대해 당혹감과 분노를 동시에 느낍니다. 반면, 케이타는 친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료타와의 시간을 통해 정서적으로 연결되어 있었으며, 순수한 아이의 입장에서는 현재의 부모가 곧 전부였습니다. 이 괴리는 관객에게 ‘가족이란 유전자만으로 결정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합니다.
또한 류세이를 키운 유이치 가족은 경제적으로는 부족하지만, 웃음과 대화가 넘치는 가정입니다. 유이치는 감정 표현이 풍부하고 아이와의 소통에 능합니다. 이에 반해 료타는 성공에 집착하고 아버지로서의 감정적 역할을 간과하고 있었죠. 시간이 지나며 료타는 유이치와의 대화를 통해 ‘아버지’라는 존재가 단순히 경제적 기반만으로 형성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영화는 극적인 반전 없이도 캐릭터들의 내면 변화만으로도 충분한 긴장감을 유지합니다. 후반부에 접어들며 료타는 결국 ‘친자’를 되찾는 것보다 ‘아이에게 어떤 아버지가 되고 싶은가’를 고민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는 가족의 형태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으로 ‘되어가는’ 과정을 통해 진짜 아버지가 되어갑니다.
가족은 혈연이 아니라 함께한 시간이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는 단순한 가족 드라마를 넘어선 인간 내면의 성찰을 담고 있는 작품입니다. 특히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특유의 절제된 연출은 이 영화를 더욱 깊이 있게 만듭니다. 감정을 과잉으로 표출하지 않고, 침묵과 눈빛, 사소한 행동들로 인물의 심리를 보여주는 방식은 관객에게 잔잔하지만 강한 여운을 남깁니다.
이 영화의 핵심 메시지는 ‘가족은 피가 아니라 시간으로 만들어진다’는 것입니다. 감독은 이를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지만, 영화 전반에 걸쳐 꾸준히 그 메시지를 쌓아갑니다. 료타가 점차 변화하며 아이와의 관계에 진심을 담기 시작할 때, 관객은 그가 진정한 아버지로 '되어가는' 과정을 공감하게 됩니다.
또한, 영화는 특정한 결말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모든 인물이 완벽하지 않고, 모든 선택이 명확하게 옳지도 않습니다. 대신 감독은 관객에게 생각할 여지를 남깁니다. “만약 나였다면?”이라는 질문을 던지며, 가족이란 무엇인지 스스로 되돌아보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는 시대를 초월한 가족 이야기입니다. 빠르게 변하는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진정으로 지켜야 할 가치는 무엇인지,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우리가 놓치고 있던 사랑과 책임, 이해와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일깨워줍니다. 영화가 끝난 후에도 오랫동안 머릿속에 남는 그 여운은, 단순한 영화 감상을 넘어 하나의 삶의 철학으로 다가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