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노매드랜드는?
2020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여우주연상 3관왕을 차지하며 전 세계 영화 팬들의 주목을 받은 **‘노매드랜드(Nomadland)’**는 코로나 팬데믹 직전 개봉한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그 이후 시대정신을 가장 잘 반영한 영화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사회 구조의 붕괴, 경제적 불안, 관계의 해체 속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팬데믹 이후 더욱 현실적으로 와닿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고립, 자유, 생존서사라는 세 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노매드랜드를 재해석해보겠습니다.
사회적 연결의 붕괴와 내면의 쓸쓸함
노매드랜드의 주인공 ‘펀(프랜시스 맥도맨드 분)’은 실제로 존재했던 네바다 주 엠파이어 제석공장 폐쇄 이후 실직과 동시에 ‘도시의 해체’를 경험한 인물입니다. 그녀는 더 이상 거주지를 유지할 수 없고, 고용 시스템 안에서 자신을 유지할 수도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그녀는 트레일러 밴을 집 삼아 떠돌이 생활을 시작하게 되며, 노매드로서의 삶을 살아갑니다.
이러한 배경은 팬데믹을 겪은 우리에게 더욱 실감 나게 다가옵니다. 코로나19 이후 우리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고립을 겪었고, 기존의 직장 구조와 관계망이 무너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자택근무, 비대면 수업, 거리두기 등의 조치는 우리 삶에 큰 변화를 가져왔으며, 그 변화는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영화는 단순히 육체적인 고립을 말하지 않습니다. 펀은 물리적으로 미국 서부를 여행하지만, 정작 그녀의 감정은 철저히 고립되어 있습니다. 남편과의 사별, 가족과의 단절, 친구의 죽음 등은 그녀를 점점 더 내면으로 침잠하게 만듭니다. 마치 그녀가 달리는 도로는 끝없는 삶의 외로움을 대변하는 듯 보입니다.
특히 인상적인 장면은 크리스마스 시즌, 한 친구의 가족이 따뜻한 식사와 안락한 공간을 제공하자 펀이 오히려 불편해하며 자리를 떠나는 장면입니다. 이는 고립이 단지 외부적 조건이 아닌, 스스로 선택하는 삶의 방식이 될 수도 있음을 상징합니다.
또한, 팬데믹 이후 많은 사람들이 인간관계의 재정의, 혼자만의 시간, 사회와의 거리감을 경험하면서, 펀의 선택에 깊이 공감하게 됩니다. 이제 고립은 단지 사회적 실패가 아닌, 존재에 대한 탐색과 회복의 시작점이 될 수 있다는 메시지가 더욱 와닿습니다.
물질문명에 대한 유랑인의 응답
노매드랜드는 미국 유랑민(Nomad)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적인 리얼리즘 영화입니다. 그 중심에는 ‘자유’라는 가치를 찾아 떠나는 여정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영화는 안정된 주거, 지속적인 고용, 정착된 삶이라는 미국식 ‘성공 모델’이 붕괴된 이후,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 떠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펀은 더 이상 주택을 소유할 필요도, 부를 축적할 필요도 느끼지 않습니다.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바람의 소리, 해질 무렵의 황야, 자연과의 교감입니다. 영화는 이러한 비물질적 가치의 회복을 탁월한 영상미와 함께 제시하며, 현대인의 삶에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 “삶의 중심에 있어야 할 가치는 무엇인가?”
코로나19 팬데믹은 이러한 질문에 대해 전 세계적으로 공통된 고민을 불러왔습니다. 사람들이 도심을 떠나 시골로, 외국으로, 또는 더 작은 공간으로 이주하며 삶의 무게를 재조정하는 현상은 노매드랜드 속 펀의 여정을 떠올리게 만듭니다. 특히 미국 내에서 ‘밴 라이프(Van Life)’와 같은 자발적 유랑 생활을 선택하는 젊은이들이 증가한 것도 영화 속 삶의 현실화를 보여주는 예시입니다.
펀은 선택의 여지가 없어 떠돌이 생활을 시작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점점 그 삶의 본질적 자유에 눈을 뜨게 됩니다.
- 출퇴근 시간에 쫓기지 않는 자유
- 타인에 대한 불필요한 기대에서 벗어난 자유
- 욕망과 소비에서 한 발짝 물러난 자유
이는 단순한 방랑이나 도피가 아닌, 삶의 본질을 되묻는 철학적 유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노매드랜드는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밀려난 이들의 삶을 관조적 시선으로 그리지만, 그 안에는 새로운 자유의 가능성을 담고 있습니다.
이처럼 펀의 여정은 팬데믹 이후 개인의 ‘삶의 기준’이 바뀌어 가는 과정을 대변합니다.
시스템 붕괴 이후 개인의 선택
노매드랜드가 전통적인 스릴러, 액션, 또는 극적 드라마와 다른 점은, 매우 잔잔한 이야기 속에 숨겨진 ‘생존서사’의 무게감입니다. 대부분의 현대 생존물은 재난이나 전쟁, 무인도 등에서의 고군분투를 다루지만, 노매드랜드는 현실 세계 속에서 조용히, 그러나 지속적으로 생존하는 이들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펀은 아마존 창고에서 임시직을 하고, 시즌마다 캠핑장 청소를 하며 생계를 유지합니다. 그녀가 일하는 환경은 임시직, 비정규직, 저임금 노동의 실태를 사실적으로 보여줍니다. 이는 팬데믹 이후 불안정해진 고용 환경과 많은 부분에서 맞닿아 있으며, 관객에게 깊은 공감을 이끌어냅니다.
한편으로 영화는 연대의 힘도 보여줍니다. 노매드 커뮤니티에서 만난 다양한 사람들은 각자 다른 이유로 떠돌이 생활을 하지만, 삶의 방식과 철학을 공유합니다. 작은 도움, 조언, 음악, 음식, 장례까지—그들은 제도 밖에서도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습니다.
이는 제도화된 복지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상황에서도 ‘사람이 사람을 돕는 공동체의 가능성’을 시사하며, 팬데믹을 통해 공동체와 연대의 가치를 다시 돌아보게 한 시대와 연결됩니다.
노매드랜드의 생존은 단순한 ‘버티기’가 아닙니다. 펀은 트레일러를 수리하고, 계절노동에 적응하며, 자신만의 생활 루틴을 찾아가며 새로운 방식으로 ‘살아갑니다’.
그녀의 생존은 현실과 타협이 아닌, 새로운 삶의 정의이자 자기 방식의 존엄한 생존입니다.
요약 및 Call to Action
노매드랜드는 팬데믹 이후 더욱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작품입니다. 고립 속에서 나를 돌아보고, 자유를 향해 삶의 방식을 재구성하며, 시스템 밖에서 생존을 모색하는 이 여정은 우리 모두가 어느 시점에서 고민했던 삶의 본질적 질문과 맞닿아 있습니다.
이 영화는 자극적인 장면 하나 없이도 깊은 울림을 줍니다. 팬데믹 이후, 당신의 삶이 흔들렸다면, 혹은 여전히 정착하지 못한 채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면, 이 영화가 따뜻한 위로와 깊은 사유를 안겨줄 것입니다.